- 보건사회연구원 실태 조사
불황에 경쟁 심화 구역 다툼도
하루수입 3000∼5000원 불과
병원비·약값 쓰면 남는돈 없어
경기 불황이 장기화하고 노인 인구가 증가하면서 빈곤층 노인들의 ‘생계 전쟁’이 치열해
지고 있다. 특히 하루에 겨우 3000∼5000원 남짓한 돈을 버는 폐지 줍기에서도 노인들 사
이에 경쟁이 심해져 몸싸움으로 번지거나, 다른 노인이 모아둔 폐지를 훔치는 절도로 노인
들 간 다툼도 빈번한 실정이다. 상점을 청소해주는 대신 폐지를 받아가는 ‘영업전략’도 생
겼다.
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‘노인실태조사’(2014년 기준)에 따르면 법적으로 노인으로 규정되
기 시작하는 만 65세 성인 1만27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, 일하고 있는 노인은 28.9%
였으며, 특히 이들 중 폐지 수거 일을 하는 노인은 4.4%였다. 다른 연령대까지 고려하면
폐지 줍는 노인들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. 경제협력개발기구(OECD) 국가 중 한국의
노인 빈곤율은 48.8%(2014년 기준)로 가장 높다.
9년째 폐지 수거를 하고 있다는 이모(여·83) 씨는 “동네 시장에서 가게 청소를 간단히 해
주는 대가로 폐지를 받는다”며 “폐지를 쉽게 모을 수 있어 상점 청소를 해주려는 노인들
사이에 경쟁률이 높다”고 한숨을 쉬었다. 기초생활수급자 최모(74) 씨는 “각자 폐지를 주
울 수 있는 ‘구역’이 있다”며 “다른 사람의 구역을 침범해 싸움이 일어나는 경우도 많고,
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폐지를 도둑맞기도 했다”고 말했다. 특히 최근 경기가 어려워지면
서 일반 가정에서 신문이나 헌 옷을 모아 직접 고물상에 갖다 파는 경우가 증가하자 노인
들이 주택가 재활용품 수거함에서 폐지를 수거 하기도 쉽지 않아졌다.
이렇게 힘들게 폐지를 주워도 일당은 평균 3000∼5000원에 불과하다. 김모(여·76) 씨는
“오전 4시부터 오후 6시까지 동네를 계속 돌아다녀도 폐지 1㎏당 90원 정도밖에 받지 못
한다”며 “병원비와 약값으로 쓰고 나면 남는 돈이 거의 없다”고 토로했다.
전문가들은 가난한 노인들의 복지 향상을 위해 우리나라가 가야 할 길은 아직 멀다고 지
적했다. 2011년 국내 최초로 폐지 수거 노인들의 생활실태 연구 결과를 발표한 이봉화 ‘관
악 iCOOP 생협’ 이사장은 “노인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모든 노인이 아니라 정말 가
난한 노인들에게 필요한 복지를 제공해주는 게 중요하다”며 “초고령사회에 들어서고 있는
우리나라에서 노인 복지가 포퓰리즘적 정치 공약에 그쳐서는 안 된다”고 목소리를 높였
다.